메뉴 건너뛰기


작가의 서재 - 참고문헌. 고전의 해석. 책. 그림. 음악.




법(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시골 사람 한 명이 찾아와서,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 남자는 깊이 생각해보고는 이윽고 이후에는 들어가는 것을 허락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가능합니다.”라고 문지기는 대답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됩니다.”



그러나 법의 문은 언제나처럼 똑같이 활짝 열려 있고,

문지기는 문 옆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그 사나이는 몸을 구부리고서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문지기는 그것을 보자 큰 소리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내가 막는 것에 상관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시오.

그렇지만 기억해두기 바라오, 내게는 위력이 있다는 것을.

더욱이 나는 제일 말직인 문지기에 불과하오.

홀을 하나씩 들어갈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으며, 그 위력은 차츰 커집니다.

나로서는 겨우 세 번째 문지기의 모습만 보아도 무서워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오.”



그런 어려움을 시골에서 온 사나이는 예기치 못했다.

그는 법이 언제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털외투를 입고 있는 문지기를 찬찬히 쳐다보면서,

그 큰 매부리코와 듬성듬성 길게 자란 타타르인 같은 턱수염을 보자,

그는 역시 입장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지기는 그 사나이에게 등받이 없는 의자를 주며, 문 옆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그곳에 앉은 채로 날이 가고 해가 갔다.

그 사나이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았고,

애원을 하여 문지기를 지치게도 해보았다.



그러면 문지기는 종종 그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져,

고향에 대한 일이며 그 밖에 다른 일들에 대해 물어 왔다.

그러나 그는 흔히 높은 양반들이 그러는 것처럼 적당히 몇 가지를 질문한 후,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그를 아직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여러 가지 물건들을 휴대하고 온 이 사나이는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해 아무리 비싼 물건일지라도 서슴없이 내놓았다.

 “나는 이것을 받아 두기는 하지만,

그것은 당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등한히 하지 않았나 하고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하고 문지기는 주는 대로 다 받으면서 말했다.



여러 해 동안 사나이는 그 문지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문지기가 다음 문에도 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첫 번째 문지기가 법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유일한 장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불운한 우연을 저주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큰소리도 쳐보았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혼잣말처럼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는 어린 아이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문지기를 열심히 관찰하는 사이에

그 털외투 깃에 벼룩이 기어 다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벼룩에게까지 매달려 자신을 도와 문지기의 마음을 돌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내 그의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주위가 정말로 어두워진 것인지,

아니면 눈 탓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 어둠속에서 법의 문으로부터 한 줄기 광채가 찬란하게 비쳐 오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그의 삶은 얼마남지 않았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전생의 모든 경험이 응집되어,

그가 이제까지 이 문지기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 하나의 질문을 만들어냈다.

몸이 차츰 굳어져 고개를 들 수가 없자 그는 손짓을 하여 문지기를 자기 곁으로 오도록 했다.

문지기는 몸을 낮게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나이가 아주 작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에 와서 또 무엇을 알고 싶소?” 하고 문지기가 물었다.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이로군.”

“모든 사람은 반드시 법을 추구합니다.” 하고 사나이가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 된 영문입니까?

이 오랜 세월 동안 나 이외에는 아무도 이 문으로 찾아와서 들여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문지기는 그 사나이의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희미해져 가는 그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포효하듯이 외쳤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소.

왜냐하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니까.

이제 나는 가서 이 문을 닫아걸겠소.”



법(法) 앞에서 - 프란츠 카프카,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