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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서재 - 참고문헌. 고전의 해석. 책. 그림. 음악.




현실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혼란스러워져 버렸다.

단 한번의 삶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은 듯 죽어가고 있다.

만일 우리가 독특한 인간 이상의 귀중한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들의 존재를 총알 하나로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질 수 있다면,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란 누구나 그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 번 뿐인 아주 특별하고 주목할 만한 존재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직 단 한 번, 그곳에서 서로 교차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점을 지나는 유일하고도 경이로운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것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정신은 형체가 되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신의 구세주는 십자가에 못 박혀지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면, 느낀 만큼 보다 안락하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면 보다 안락하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지식인이라 할 수는 없다.

나는 끊임없는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별들에게서 또는 책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의 피가 주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내 이야기는 즐거움을 주고 있지 않으며,

만들어진 이야기처럼 달콤하거나 조화롭지 않다.

자신을 더 이상 기만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의 삶과 같이 불합리하고 혼란스러우며, 일종의 광기와 꿈의 맛이 있다.

삶은 저마다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추구해가는 과정이다.


삶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에 대한 암시다.

일찍이 어느 누구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 이는 다소 서투르게, 어떤 이는 좀 더 투명하게, 자기의 힘이 닿는 만큼 최선의 노력을 한다.

누구나 출생의 잔재, 태고의 점액과 알 껍데기를 마지막까지 갖고 간다.


더러는 전혀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나 도마뱀, 개미에 그쳐 버린다.

또 더러는 머리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자연의 주사위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같은 협곡에서 나오고, 같은 어머니와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같은 심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시도를 통해 인간은 각자 자신의 운명을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허나 자신이 지닌 의미에 대한 해명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